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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말씀요약

[25.5.25 주일말씀 설교전문]
2025-05-25 15:49:19
가포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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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지난 3주 동안 자녀들과 부모님, 우리 선생님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고, 이제 다시 야고보서로 돌아왔습니다. 
야고보는 지금까지 성도의 언어생활에 대해 많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도 언어생활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핵심내용은 <비방하지 말라>입니다. 또 뒤이어 나오는 본문은 <자랑하지 말라>입니다. 이 내용은 <생명의 삶공부>에 오시면 자세히 배울 수 있는 부분입니다. 아직 못하신 분들은 차후에 삶공부에 들어오시길 기대합니다. 
우리 1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왜냐하면 형제자매가 서로 비방하는 것은, 그 사람만 해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판단하고 결국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판단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요? 
여기 형제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이들>을 말합니다. 우리와 같은 믿음의 형제자매들입니다. 그럼 <율법>은 무엇일까요? 야고보가 말하는 율법은,  1장 25절에 언급한 것에서 출발합니다. 이 율법은 <자유케하는 율법>, 즉 사랑의 법, 성령의 법을 말합니다. 구약의 모세를 통해서 준 율법이 아닙니다 
신약의 시대에 예수님을 영접한 이들에게는 거룩하신 영, 예수님의 이신 성령께서 내주해들어와 함께 살아가십니다. 그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거룩하게 살려는 마음과 소원을 주시고, 그 일을 행할 힘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구약의 율법을 뛰어넘는 우리의 개인교사와 같으신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성령님은 다양한 상황 속에서, 각자에게 주시는 <마음>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일례로, 로마서 14장에는 바울이 <우상제사에 쓰고 나온 음식을 먹을 수 있느냐 마냐?>의 문제를 언급하는데, 많은 크리스천들이 <자유롭게 우상제물을 먹었습니다>, 그것이 문제되지 않다는 확신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지극히 약한 자를 위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것이 성령님께서 주신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실족시킬 일 같으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 말합니다. 같은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런 적용점과 생각은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모든 이들이 나같길 원하는 것이고, 신앙의 관점을 획일화시켜서, 그것에서 벗어나면, 가차없이 비방하고 비판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지금 그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비방하는 것은, 그 안에 각자에게 율법을 주신 성령님>을 비방하는 일이 된다.. 그래서 결국 비방은 하나님을 비방하는 일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겁니다. 하나님 노릇 하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야고보는 뭐라 말합니까? 11절을 다시 보십시요. 
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라.. 뭐입니까? <재판관이라> 율법의 준행자는 율법을 지키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만큼 율법을 주신 하나님, 성령님을 매우 중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님을 모신 사람들도 중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준행자입니다. 그러나 재판자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하는 사람입니다. 율법의 재판관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이죠. 
12절이 말하죠. 
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만일 여러분들이 회사에 들어갔는데, 같은 날 비슷한 또래 사람이 같이 입사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당신, 일하는거 보니까, 그래갖고는 승진하기 힘들것 같다. 정말 출세하려면 이렇게 이렇게해야 한다>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아, 그러냐? 이 사람이 이렇게 나를 생각해주는구나>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수시로 와 가지고는 <당신, 그렇게 일해서는 출세 꿈도 꾸지 말아라. 일하는 태도가 영 글러먹었다. 오늘은 왜 지각했냐? 어제는 어디갔다 왔냐?> 이런다면, 어때요? 화가 나겠죠? <당신이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야? 내가 출세를 하든, 짤리든, 내가 하고, 상관이 해주는 거지... 당신이 뭔데 그런 소리를 하냐?> 그렇게 하지 않겠어요? 이게 바로 성도끼리 비판하는 게 이런 겁니다. 우리에게는 재판관이 계시다는 거예요. 그분이 판단하고 그분이 상을 주시든, 벌을 내리든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이들의 신앙을 수시로 체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 삶, 내 신앙은 제쳐놓고,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잘 지켜냐?> 그거 체크하고 산다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예요. 
[마 7:3-5]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또 로마서14:4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롬 14:4]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은 철저히 자기 자신에게 적용되는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앉아서 교통정리를 하시는 분들이 계셔요. <아.. 저 말씀은 이집사가 들어야되고, 이 말씀은 박집사가 들어야되고... 오늘 우리 남편 나왔어야 되는데.. 아.. 우리 집사람이 들어야 되는데...> 
자기한테는 하나도 적용하지 않고, 앉아서 교통정리하는 분들... 이건 이리로, 저건 저리로... 계속 교통정리만하는 사람, 그가 재판자라는 겁니다.  
문제는 <우리가 율법의 비판자, 재판관이 되기 시작하면, 점점 율법의 준행자에서 멀어진다>는 겁니다. 
안 그렇겠어요? 재판하는라고 바빠가지고, 나를 돌아볼 시간이 없어요. 
여러분! 정말로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변해가는 사람들은, 자기 삶 돌아보기도 바빠서, <남들이 어떻게 사냐?> 그거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정말로 주님 뜻대로 살아 볼려고 애를 쓰면, 내가 얼마나 무력한 사람인가를 처절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니, 남들 흉보고 다닌 여유가 없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율법의 재판자가 아니라, 준행자가 되어서 영적 성장을 이루고 다른 이를 세워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1.우리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때론 느끼는 우월감이나 좌절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대개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오는 거 아닙니까? 그것은 우리의 푯대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삼는다면, 우리는 누구도 예외없이, 분발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재판관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내가 살아온 삶의 경험과, 배워온 지식, 만난 사람들에 의해 받은 영향 등에 의지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나만의 관점, 나만의 생각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렌즈입니다. 이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다 각자 자기 렌즈를 껴고 사는 겁니다. 파란색 렌즈를 껴면 세상이 파란 것이고, 빨간색 렌즈를 껴면 세상이 빨간 겁니다. 그것이 한계입니다. 
이런 인간에게는 객관적으로 사물을 보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따라서 하나님처럼, 공정한 심판을 할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법정이 공정을 추구하는데, 정말로 정의와 공평, 공정이 실현된다면, 다 100%승복해야죠. 대법원판결까지 나면.. 그런데, 억울하다는 사람은 항상 존재합니다. 왜 그럴까요? 관점이 다르고, 그 사람 안에 있는 동기마져 파악하기는 정말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복잡해요. 마음의 동기도 순수하지 않을 수 있어요. 한가지가 아니고 그것도 여러가지로 복합적이고 얽혀있어요. 그래서 심리학이 필요한거죠. 사람의 마음을 분석하는 겁니다. 그런데요. 아무리 분석을 잘해도, 진실하지 않으면 소용없어요. 아니라고 하는데 어떻게 할 겁니까? 그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아무리 조언을 잘해줘도, 내 관점입니다. 문제의 명확한 해답을 가지고 있는듯해도, 온전한 것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율법의 재판관이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겁니다. 

2.교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형제를 비방하고 재관판 노릇을 하려하는 뿌리깊은 본질은 교만입니다. 완전했던 하나님 나라의 균열도, 천사장 루시퍼의 교만 때문이고, 첫 사람 아담의 범죄도 하나님 자리를 탐하고 하나님 노릇하려 했던 <교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남을 비방할 때, 그 마음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면, <그래도 나는 다른 사람보다 성실하다. 나는 저사람들처럼 위선자는 아니다> 이런 우월감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마음 가졌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조명해 주시면, 그렇게 말하고 생각하는 우리가 얼마나 다른 이들을 부지불식간에 실족하게 하고, 상처를 주고 살았는지.. 오히려 나의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볼 수 있게 됩니다. 그걸 회개하는 겁니다. 그럴 때 율법의 준행자가 될 수 있습니다. 

3.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계 12: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마귀는 처음부터 <비방자요 참소자>였습니다. 최종 심판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자리를 탐하고 도전하는 자가 마귀입니다. 그 어둠의 영은, 지금도, 서로간의 비방을 통해서, 인간을 파괴시키고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이런 영적 속성을 파악하고, 야고보서 4:7절에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시면서, 시험에 들지 않고, 악에서 구원받기를>기도하라 하셨습니다. <비방은 마귀의 시험에 걸려드는 일이고, 악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영적 사실을 직시하고, <마귀를 대적해야>합니다. 사랑과 포용이 가득해야 할 가정에 비방의 영이 틈타지 못하도록 기도해야합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가 가득해야 할 작은교회 가정교회 목장과 연합교회>에, 비방의 영이 머물지 못하도록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저를 한번 따라서 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방의 영은 떠나갈지어다> 선포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거기까지인가요? 아니요. 한 가지를 더 구해야 합니다. 

4.사랑의 열매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모든 것을 잘 판단해야 합니다. 잘 판단하고 분별해야 옳고 그른 것을 볼 수 있고, 우리가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판단의 동기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판단의 동기가 사랑이 아니라면,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니라면, 그것은 비방이 됩니다. 비난이 됩니다. 그래서 비방하고 비난할 때는 보통 흥분하고 화를 냅니다. 그러나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렇지 않습니다. 안타까운거예요. 어떻게하면 그를 그 잘못된 길에서 도와줄까를 생각합니다. 
4세기의 교부 크리소스톰이 이런 말을 했답니다. 
“바로 잡으라! 하지만 원수로서 혹은 벌을 강요하는 적으로서가 아니라 의술을 제공하는 의사로서 그렇게 하라” 
누군가를 고쳐주려하는 마음, 세워주고 도와주려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거예요. 
검열관같은 마음으로, 벌을 주려고 작정한 재판관같은 마음으로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판단의 근거는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정성을 드려 가꾸지 않은 밭에는 쓸데없는 잡초만 자랍니다. 또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는, 푸른 나무대신 곰팡이, 세균 벌레들만 자랍니다. 
그와같이 은혜와 생명되시는 예수님이 안계시면, 위선과 비판, 서로를 향한 비방과 비난, 정죄만 가득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예수님을 더 깊이 모시십시오. 여러분의 목장에 예수님을 더 깊이 모시십시오. 그분의 <따뜻한 은혜와 사랑>으로 채워십시오. 
그렇게하면 냉냉한 어둠의 그림자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비방과 비난, 정죄와 비판은 물러갈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가정교회 문화인 허깅문화가 참 좋습니다. 여러분! 좀 맘이 불편한 분이 계셔도 한번 꼭 끌어안아주세요. 그러고 그 마음을 읽어줘보세요. 거기서 은혜와 사랑이 꽃 피게 될 것입니다. 
오늘 선교회가 모일텐데, 선교회 끝날 때 다 허깅해 주세요.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수고많으십니다. 격려해주시면서, 꼭 안아주세요. 우리 모두는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집에 가셔서 가족들을 꼭 안아주세요. 반찬이 달라질 겁니다. 
우리 모두가 율법의 재판자가 아니라 준행자,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어서, 하늘의 복을 풍성히 누리는 복된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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