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요약
평안하셨습니까? 지난 한 달간 각자의 자리에서 교회를 잘 섬겨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세례 교육으로 섬겨 주신 장로님들, 또 가정교회 목장 모임을 가정교회를 세워 가시는 목자 목녀님들, 지금은 부목자님들이 계실 텐데, 목장을 협력하며 도와주시는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또 지난 한 달간 말씀을 전해 주신 목사님들께 감사하고, 새벽·수요 강단을 섬겨 주신 이정렬 목사님, 김태형 목사님, 유용호 전도사님 너무 감사드립니다.
오늘 자녀들과 함께 가족이 앉아서 예배드리시는데, 우리 자녀들 한번 축복해 줄까요? 주변에 있는 우리 어린이, 청소년들 손도 잡아 주시고, <사랑해요. 축복해요> 축복해주시고, 한번 박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명절은 잘 보내셨는지요? 명절이 되면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죠. 그때 맛있는 음식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아이들은 용돈도 받고. 그러고 가족들이 헤어질 때면 마음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모습입니다.
“아버지가 많이 부드러워지셨어.” “우리 형이 왜 이렇게 성숙해졌지?” “조카 마음이 많이 컸네.” 뭐 이런 거 아닐까요?
저도 이번에 가족 형제들이 함께 모였는데, 우리 둘째 형이 다시 보이는 겁니다. “어 이런 사람이었나.” 우리 가족들 사이에서는 좀 게으르고 고집스러운 이미지가 강했는데, 이번엔 아버지를 대하는 모습, 특별히 저희 장인어른을 잘 섬기는 모습, 이 이야기는 설명이 필요한데, 저희 형님이 기술자입니다. 그런데 저희 장인어른이 파킨슨을 오래 앓고 계십니다. 그래서 마음으로는 하고 싶은 것이 많으신데, 몸이 안 따라주니 기술자인 저희 형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하는 겁니다. 그때마다 친절하게 저희 형님이 장인어른을 잘 응대해 주신 것을 보고 기뻤습니다. 이런 걸 보니 너무 다르게 보이는 겁니다. “형님이 참 속이 깊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누군가 변화된 모습을 볼 때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변하지 않는 사람을 볼 때는 소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명절에 가족이 만나는 것이 때로는 힘이 들죠. 왜 그런가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존재가 변하지 않고 성장하지 않으면 관계는 더 이상 개선되지 않습니다. 힘든 관계가 매번 반복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단 타인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이지요. 나도 변하지 않고 성장하지 못하면 누군가에게 짐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새 피조물로서 시작하게 하시고, 변화될 수 있는, 존재가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신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 말씀하셨죠.
[마 11:28-30]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우리를 초청하시고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고 그분과 동행하게 되면, 온유하고 겸손하신 그분의 성품을 닮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게 배우라”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없는 사람들, 그들이 변화되지 않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모신 사람들, 우리 변화되지 않고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자연스럽지 못한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바뀌는 것이고, 정서적으로, 인격적으로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터 스카지로 목사님은 <정서적으로 건강한 교회>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적으로 성숙하면서 정서적으로 미성숙할 수는 없다.” 그것이 변화입니다.
오늘 본문은 창세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한 사람이 변화되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혜택을 누리게 되는지를 말해 주는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45장에서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있습니다. 형들에게 팔려가기 전, 22년 전 17세 요셉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리고 13년의 연단 기간을 통해서 이집트의 총리에 오른 요셉은 어떤 사람으로 변화되어 있나요? 그런 변화를 통해서 그 주변 사람들이 입게 된 혜택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변화는 누가 만든 것일까요? 이것이 오늘 말씀의 주제들입니다.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1.고난 속에서 연단되었습니다.
창세기 37장을 보면, 17세 요셉은 아버지의 편애 속에 채색옷을 입고, 분위기 파악할 줄 모르는 철부지같이 등장합니다. 형들의 꿈 이야기를 자랑하고, 형들의 잘못을 일러바치는 남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소년이었습니다. 비전은 가졌지만 존재는 성숙하지 못한 상태였던 것이죠.
그런 요셉을 하나님께서 연단하시는데, 형들의 미움을 받아 구덩이에 빠지고 노예로 팔려가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고 그 세월이 13년입니다. 그런다고 그가 절망한 것이 아닙니다. 가는 곳마다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얘기로 돌아온 것은 배신과 억울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그런 요셉과 하나님이 함께하신 것이죠.
성경이 반복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한 문장이 있는데,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니.” 라는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요셉을 고난에서 빼주신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함께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변화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환타지 영화에 나오는 변신이 아닙니다. 고난의 학교에서 빚어져 가는 시간의 열매입니다. 돌아보면 그렇지요. 내가 그 일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겸손해질 수 있었을까,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었을까. 하나님 의지하고 살 수 있었을까. 예, 정말 그렇습니다. 요셉은 그렇게 고난을 통해서 익어 갔습니다.
그 변화된 모습을 보십시오. 그 변화된 모습은 여러 방면으로 나타납니다.
먼저 마음이 변화되었습니다. 2절 말씀.
2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형들을 보고 분노가 치밀어 오른 것이 아니라, 눈물이 먼저 나왔습니다. 감정이 변화된 것이고, 마음이 변화된 것입니다.
또 시선이 변화되었습니다. 5절.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요셉이 여기까지 온 경위를 인간적인 눈으로만 보고 있다면, 반드시 복수해야 합니다. 잊을 수가 없지요. 그러나 요셉은 이 모든 과정을 하나님이 섭리하셨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눈이 열린 것입니다.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17세 요셉의 눈은 형들의 잘못만 보였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손길이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용서합니다. 4절 말씀.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형들, 이렇게 가까이 오라는 것입니다. 상처 준 사람들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두 번째, 이렇게 변화된 요셉을 통해서 일어난 일들이 무엇인가요?
2.온 가족을 살렸습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9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아뢰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지체 말고 내게로 내려오사
10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머물며 나와 가깝게 하소서
저는 여기서 “나와 가깝게 하소서”라는 말이 요셉의 마음을 다 표현해 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가깝게 하소서.
여러분, 사람마다 너무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죠. 가까워지면 부담스러워지고, 상처받을 것 같고,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 같아서 가까이 가기 꺼려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미 아버지 야곱의 예언대로 담장을 넘은 가지가 되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살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가족들이 똑같아요. 여전히 가나안 땅에 머물러 있었다면 다 굶어 죽는 거예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요셉과 가까워지니, 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구와 가까워져서 생명을 얻고 살아가고 있나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오라 말씀하셨죠. 가까이 오라, 내게로 오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우리를 가까이로 초청해 주셨습니다. 상처 주시려고요? 부담 주시려고요? 아니요. 그분과 가까워질수록, 그분을 아예 모시고 살면 살아갈수록, 그분의 생명과 그 충만한 생명력을 누리며 살 수 있기 때문에 우리를 오라 말씀하신 겁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교회를 섬기는 모든 일들은 우리를 힘들게 하려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도구에 불과합니다. 어떤 도구요? 저와 여러분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도구입니다.
우리 목자 목녀님들, 물론 목원분들도 많이 수고하시지만, 그러나 목자목녀님들이 앞장서서 수고하십니다. 이것은 이론이 아닙니다. 실질적으로 매주 섬겨야 하는 몸의 수고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밥 차리고 음식을 차리고 하는 그 사역이 본질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도구입니다. 여러분을 변화시키고자 하시는 통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함께 여러분의 집을 오픈해 주시면 여러분 가까이로 사람들을 초청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흘려내 주시면 여러분은 축복의 통로, 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통해 우리가 성장해 갑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 오고 싶어 하는 넓은 그릇이 됩니다.
오늘 이야기는 바로 그런 것입니다.
변화된 한 사람을 통해서 기적 같은 많은 열매가 맺어지고 있습니다.
그 기적같은 열매가 무엇입니까? 요셉의 변화와 성장을 통해서 끊어진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15 요셉이 또 형들과 입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서야 요셉과 말하니라
22년 동안 형들이 얼마나 죄책감에 눌려 살았을까요? 그걸 풀어준 거예요.
아버지 야곱은 어떻했습니까? 22년전 아들을 잃고 삶이 멈춰버렸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소생시킨 것입니다. 이런 관계의 회복뿐만 아니라, 기근에서 온 가족의 생명이 보존되고 고센이라는 살아갈 새 터전이 주어졌습니다.
여러분, 가정 안에서 누군가 한 사람이 변화되면 가정이 살아납니다. 가장의 역할이 크겠죠. 그러나 가장이 아니더라도 아내가 변하고, 부모님이 안 되면 자녀들이 변하면 됩니다.
<부모의 삶>에 보면 그런 얘기가 나온대요. 왜 아내를 <아내>라 하느냐? 집안 부인들은 집안에 해와 같은 존재라는 겁니다. 해가 떠 보십시오. 맑고 쾌청합니다. 따뜻합니다. 그런데 그 해가 지면 우중충한 거예요. 어두워집니다.
그래, 집안 분위기는 여성들이 움직여 갑니다. 그래서 더 은혜 가운데 사셔야 합니다. 그러면 그 아내들을 정말 해가 뜨게 만들어가는 사람은 누구인가? 남편입니다. 남편이 아내 얼굴에 해가 뜨게도 할 수 있고 지게도 할 수 있습니다. 미소를 줄 수도 있고 근심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뭐라 말씀합니까? 디모데전서 2장 8절
[딤전 2: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여러분! 최고의 선물이 무엇일까요? 내 남편에게, 내 아내에게, 내 자녀들에게 최고의 선물은 무엇일까요? 변화입니다. 누구의 변화요? 나의 변화예요. 부모님에게는 최고의 선물도 자녀 된 나의 변화입니다.
저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내가 교회에 줄 수 있는 선물은 무엇일까? 내가 우리 성도님들의 과분한 사랑을 받고 사는데, 목사로서 내가 교회에 줄 수 있는 선물은 무엇일까. 제가 뭐 돈이 좀 많다면야, 근사한 것 해드리면 좋겠는데, 그럴 수도 없고... 저의 변화이겠다. 성숙함이겠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겠죠. 목회자가 교회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목사다움을 보일 수 있는 변화된 삶일 것입니다.
복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목장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무엇일까? 나의 변화입니다. 그래서 더 많이 포용하고, 더 많이 용서하고, 더 많이 품어줄 수 있는 그런 목자의 삶, 그런 목녀의 삶, 그런 동역자의 삶. 그것이 최고의 선물입니다.
제가 명언 하나 지었습니다.
<명절 선물 세트는 금방 사라지지만, 변화된 나의 모습은 평생 남는다.>
그것이 존재의 변화입니다. 요셉이 가족을 살린 것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가 아닙니다. 총리라는 자리, 그 doing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품고 용서할 수 있는 존재의 사람, being이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시죠.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나의 변화입니다>
이제 마지막 세 번째, 그럼 이 변화는 누가 하는 것인가? 변화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질문에 해답은 하나님께서 변화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3.하나님께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여러분, 정말 그렇습니다. 결심이 우리를 조금은 달라져 갈 수 있지만, 근본적인 변화까지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변화의 핵심은 <존재의 변화>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변화되려면 내면 깊은 곳이 변화돼야 합니다. 그럼 그런 변화를 내가 할 수 있을까요? 아니요. 우리는 결심하고 다짐하고, 또 포기하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경험을 수도 없이 해왔습니다. 그럼 이 변화는 누가 만들어 주는 걸까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요셉의 고백을 보십시오. 7-8절입니다.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그 인생의 주어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7절도 하나님이... 나를 이리로 보내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나니아연대기>라는 C.S. 루이스의 복음적인 내용을 담은 영화가 세편의 시리즈로 나왔죠. 그 마지막인 <새벽 출정호의 항해>라는 곳에 보면, 유스터스라는 소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소년은 매우 이기적인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그와 어울리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 유스터스가 어떤 힘에 이끌려 어느 동굴에 들어가는데, 그곳에 다이아몬드, 루비, 황금이 가득했습니다. 소년은 이제 부자가 돼서 자신을 가까이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수하려는 마음을 먹습니다. 그런 마음을 먹은 채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동굴이 다름 아닌 용의 거처였습니다. 잠에서 깨보니 자신이 용으로 변해 있는 거예요.
이제 그는 세상으로 나갈 수 없다는 걸 깨닫습니다. 배에 탈 수도 없고, 그래서 섬에 홀로 남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평생 혐오스러운 모습으로 말입니다. 절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위대한 사자 아슬란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유스터스를 깨끗한 연못으로 데려갑니다. 그리고는 옷을 벗고 연못으로 뛰어들라 말합니다. 유스터스는 그 옷을 벗어대고 이빨과 발톱으로 비늘을 뜯어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비늘 속에 또 비늘,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것을 벗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아슬란에게 요청합니다. 결국 아슬란이 그것을 벗기기 시작합니다. 아슬란의 발톱이 깊이 들어갈수록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고통을 지나서 결국 완전히 그 옷이 벗겨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변화는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단지 우리가 할 일은 변화되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대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더 깊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말씀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켜 주십니다.
예수님 우리에게 말씀하시죠.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여러분, 비를 받지 않으려면 큰 우산 밑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산이 가는곳으로 따라가야합니다. 우리가 그분의 큰 은혜를 누리고 살고자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우산 밑으로, 그 은혜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그렇게 은혜의 우산 아래서 예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을 사랑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럴 때 저와 여러분을 가장 아름답게 빚어가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변화는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가을이 시작되는 문턱에서 주님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담장을 넘는 아름다운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여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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