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요약
누가복음 15장은 잃은 것을 찾는 것에 대한 일련의 비유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야기의 앵글은 다르지만, 핵심은 동일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를 봐야합니다. 1-2절을 보십시요.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 앞에 나아왔고,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죄인이라 불려지는 기피의 대상은, <세리, 창녀>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사람들은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다> 생각했고, 만일 이들이 천국에 들어간다면, 그 천국은 자기들이 들어가지 말아야 된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해주시는 예수님, 바리새인 서기관 입장에서, 눈엣가시였습니다.
일련의 세 가지 비유는 그들의 마음을 아신 예수님께서 해주신 이야기입니다. 그중에 하이라이트는 단연 오늘 읽은 탕자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한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고, 이제는 다 자란 성인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눈에는 참 대견해 보였겠죠. 그런데 어느날 둘째아들이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겁니다.“아버지! 아버지가 세상 떠나실 때 저에게 주려고 유산을 작정하고 계신거 있으시죠? 그거 저에게 주세요. 지금 주세요. 뭐 아버지 돌아가실때까지 기다릴거 있어요. 지금주세요” 하도 떼를 쓰니까, 마음은 불편했지만, 그냥 떼 주었습니다.
당시 유대관습상, 장자에게는 두 몫을 주었으니, 최소한 삼분의 1을 챙긴 것입니다. 그러고 몇 일 후에, 먼 곳으로 이민을 가버렸습니다. 이민가서 뭘 했냐? 지금으로 말하면, 큰 집 사고, 분에 넘치는 자동차 굴리고, 나이트클럽 주점 다니고, 슬롯머신 땡기고.. 그렇게 한겁니다. 그것을 오늘 성경은 <허랑방탕>이라 표현합니다. 그래서 얼마동안 신나게 한참을 즐기며 지냈는데... 돈이 솟아나는 샘물도 아니고, 가지고 온 것이 바닥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내가 땀 흘리고 고생하면서 번 돈이 아니면, 쉽게 쓰기 마련입니다.
그런데다 설상가상으로 기근이 찾아왔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대공황, 경제한파입니다. 우리나라에 있었던, IMF같은 일이 일어난 거예요. 그때, 지금생각해봐도, 학교에 도시락도 못싸오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일순간에 고통속에 들어가게 된거죠.
그러니.. 주머니가 비니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슬금슬금 다 떠나버렸습니다. 이 아들이 그건 몰랐을 거예요. 세상이 이렇게 야박하다는 것을요. 그게 끝이 아닙니다. 굶어죽을수는 없으니, 돼지키우는 농가에 취직을 하게되었는데, 기근이 워낙 심하다보니, 돼지먹을 양식도 귀하게 된 것입니다. 어느날 밤에 누워 하늘을 보니, 쏟아지는 별빛속에, 아버지와 함께 지냈던 행복한 시절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거예요. 그리고 생각합니다. “내가 왜 이런 신세가 되었을까? 아버지께 돌아가고 싶다”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모든 것을 집어던지고 길을 떠난 것입니다. 마음으로 아버지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나 연습했습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에게 죄를 지었사오니, 이제는 저를 아들이라 부르지 마시고 품꾼의 하나로 여겨주소서”
가는 길에 또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그러고 가는데, 이제 익숙한 동구 밖 마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저 앞에서 누군가 소리치며 뛰어오고 있었습니다. 눈을 크게 떠보니, 아버지예요. 아버지가 두 팔 벌려 달려오는 겁니다.
“얘야 너 맞지, 너 맞지?” 아들을 덥석 끌어안더니, 볼을 비비고, 어깨를 끌어안고.. 아들이 말합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에게 죄를 지었사오니.. 이제부터는 아들이라 부르지 마시고... ” 어쩌고 하는데, 아버지가 그 입을 막고는 “얘야 그런 말 안해도 된다.. 그만해.. 그만해.. 가자 가자, 어서 집에가자” 하고 그 손을 끌고 가는 거예요. 그리고 집에 가서는 종들에게 “내 아들이 왔다.. 목욕물 준비하고, 새옷을 갈아입혀라.. 신발도 신기고, 가락도 끼워주어라. 그리고 언른 송아지 잡아라.. 그리고 이웃사람들도 청해라.” 그리고 “죽은 줄 알았던 내 아들이 돌아왔다” 하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데... 그때, 큰 아들이 돌아온 것입니다.
아버지가 큰 실수를 했죠. 동네 사람들은 청했는데, 큰아들한테 연락하는걸 잊었어요.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너무 좋아가지고..
그렇게 큰아들이 보니까, 가관이예요. 동생 돌아왔다고 온 집안이 야단법석입니다.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안 들어가요. 아버지가 나와서 아들에게 말합니다. “얘야, 왜 안들어가냐? 동생이 살아돌아왔는데..” 그런데도 분이 풀리지 않습니다. 아마도 성경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계속 옆집이든, 친구집이든... 대포잔 한잔 따라놓고, 씩씩거리며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에서 어떤 걸 생각하셨습니까?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큰 아들입장에서, 둘째아들 입장에서, 아버지입장에서... 그런데 오늘 저는 아버지입장에서 아버지의 마음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 이야기의 아버지가 곧 하나님이신데..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의 마음이 어땠습니까? 우리 23절을 보십시요.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절도 보십시오.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유산을 가지고 집정리해서 나간아들이니... <뭐 죽은 아들>이나 다름없죠.
레바논에서 사역하시는 어느 선교사님이 그 선교지 상황이 유대지방 문화와 비슷해보여서 이 이야기를 전해주고, 그들의 반응을 살펴봤대요.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둘째아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용서못할 죄인>이라는 거예요. 왜냐? 아버지 버젖이 살아계시는데, 유산을 달라하는 것은, <아버지! 왜 안 죽습니까? 빨리 안 돌아가십니까?> 아버지 빨리 죽으라는 말과 똑같다는 거예요. 그러니... 아버지 가슴에 대못을 박아도 여러개 박은 아들입니다.
옛날 어머니들, 가끔 그런 얘기하셨죠. <아이고.. 내가 저런거 낳을라고 미역국 먹었냐?> 얼마나 속이 상하시면 그러겠어요?
그러니까, 이 아들은 아버지와 관계를 끊는 샘치고 간 겁니다. 그래서 멀리 간 거예요. 짐정리 다 끝내고... 그렇게 떠났으니, <벼룩도 낫짝이 있다고... 이제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리는거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종이라 여겨주세요> 그런겁니다.
그러니.. 인간적인 마음으로 생각하면요... 첫째아들 마음에 훨씬 공감이 갑니다. 아지 어쩌면 우리는 첫째아들 입장에 서있는 경향이 훨씬 큽니다. 그 말그대로죠. <아버지의 재산을 창기와 나눠먹은 이 자식이 뭐가 좋다고 이렇게 떠들썩하게 잔치상을 차리십니까?> 하는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마음은 달랐어요. 그냥 그 아들이, 가슴에 못박고 나간 그 아들이.. 다시 돌아온 것만으로, 그냥 기쁘고, 좋으신 거예요.
그 기쁨이 얼마나 큰지, 최고조에 이른 표현을 보십시요.
32절, 이 말씀은 첫째를 달래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네 동생이지 않느냐? 같은 피를 나눈... 네 동생이 죽었다가 살아나지 않았느냐? 둘째는 네 동생이기도 하지만, 내 아들 아니냐?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는데... 우리가... 너와 네가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죠. 그리고 이 기쁨은 <마땅한 기쁨>이라고 말하죠.
그러니 지금 첫째 아들에게도 <같이 기뻐하자>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둘째는 세리, 창기, 죄인들이고... 아버지는 그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것을 그렇게 기뻐하시는데, 첫째 아들인 바리새인들은 그게 그렇게 싫은 거예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은연 중에 첫째 아들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차가운 시선으로 도덕적인 눈을 가지고, 그들을 평가합니다. 그들에 대한 숨겨진 분노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전도의 대상을 고르고 분류하는 데까지> 이어집니다.
그것이 이 땅의 교회의 이미지 가운데도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필립얀시라는 기독교작가사 쓴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도 그 한토막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참 교회가 뭘까? 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날 얀시에게 몸을 팔아 연명하고 사는 창녀가 찾아왔습니다. 그에게 두살배기 딸아이가 있는데, 자기 몸은 병들고, 너무 가난해서 도저히 하루를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얀시가 고민하다가 말했습니다. <교회에 가서 말씀을 드리고 도움을 받으시던지, 상담을 좀 받아보시죠> 그랬더니 이 여인의 표정이 갑자기 달라지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요? 거긴 뭐하러가요? 그렇지 않아도 비참해죽겠는데, 거기가면 사람들때문에 더 비참해져요”
교회에가면 더 비참해진다는 거예요.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고, 차갑고...
참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이 땅의 교회는, 죄인을 부르시고, 죄인이 돌아올 때, 발벗고 뛰어가시며 끌어안고, 춤까지 추면서 기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과는 거리가 있는지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마음으로 정죄하고 있는 자들이 교회 문턱을 넘어왔을 때, 우리 마음이 큰 아들처럼 불편함을 느끼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합니다.
여러분! 기독교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기독교의 본질은 죄인을 구원하는데 있습니다. 또 연약한 죄인을 통해서 위대한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를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어떤 혈통으로 오셨나?를 말하주는 족보인데, 거기에는 <썩 정상적이지 않은 여인들>의 이름이 네명이나 들어가 있습니다.
첫째는 <다말>입니다. 다말이 누굽니까? 열두지파 장자지파 유다의 며느리입니다. 자식을 낳으려고, 창녀로 위장하여 시아버지인 유다를 유혹해서 자식을 낳았습니다. 그렇게 낳은 아들이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두번째는 <라합>입니다. 라합은 누구입니까? 여리고의 이름난 기생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세번째는 <룻>입니다. 그는 모압여인이었습니다. 율법규정에 총회에 영원히 들어오지 못할 사람이었습니다. 마지막은 <밧세바>입니다. 이 관계도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어두운 사건이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재료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내 인생에도 들추고 싶지 않은 과거가 있죠. 저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거 오려내고 싶잖아요.
지금 거룩하신 예수님이 탄생하는 족보에 이런 세속적이고, 어두운 역사를 굳이 적어놓을 이유가 있을까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치적에 손해가 날것같으면, 공개하지 않거나, 삭제하거나, 적당히 미화시켜버립니다. 천민 출신인 <헤롯왕>도 자기 족보가 형편없는 걸 알고, 나중에 다 그 족보를 불태워버렸습니다.
여러분! 이게 기독교입니다. 이건 무엇을 말하고 있는건가요?
<그 누구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서 제외될 인간은 없다> 하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구원에서 열외 될 인간은 없습니다.
우리가 볼 때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악해서, 저런 사람은 안될거야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더 악한 자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더 기뻐하시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더 악하고, 덜 악하고가 의미가 없고, 차별치도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은 오로지 <긍휼>입니다.
여기 아버지의 마음을 보십시요. 20절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측은히 여겨..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도 측은히 여겨서 불러주셨고, 교회밖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도 측은히 여겨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은 어떠해야할까요?
2.전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에 동참하는 자들이 되어야겠죠.
예수님은 죄인 한사람을 찾으시기 위해 이동네 저동네 수만리 길을 걸어다니셨습니다. 그러면서도 피곤하다. 지친다 하지 않으셨습니다. 찾아가셔서 가르치고, 고치시고, 돌보는 일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에 참여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그 예수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을 나도 사랑하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나도 찾는 것입니다.
이땅에서 구원받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사도요한은 말합니다.
[요일 5: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새벽시간에도 이말씀을 드렸는데, 이단의 괴수, 앞잡이가 아니고서는... 누구든지 차별치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차별치 말고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럴때, 그에게 생명을 주시겠다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문턱이 낮아야합니다. 교회는 의로운 사람들만 들어오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는 생각할때,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덜 악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보시기에는 <나보다 더 악한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나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죄인이 돌아오실 때, 춤을 추십니다. 우리가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할 때, 우리도 하나님과 함께 춤을 추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아버지의 마음을 품길 바랍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품으면, 아버지의 기쁨, 그 하나님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입니다. 그 기쁨을 온전히 누리며사는 우리 삶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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